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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이 죽다 살아난 이야기

2012-10-04 04:00 | 추천 0 | 조회 21

안녕하세요? 이현정입니다. 오늘은 연암 박지원이 죽다 살아난 이야기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조선 영조 때. 대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연암 박지원은 그가 18세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고 내로라하는 의원들에게 보여줘도 증세는 더욱 심해갈 뿐이어서 부모의 속은 계속 타들어가고 있었다. 여러 의원들이 왔다 가고 또 왔다 가고 숱한 의원들이 약을 써도 안 낫던 중 한 의원이 처방 아닌 처방을 하고 가버렸는데 그 의원의 처방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증세는 도저히 약으로는 고칠 수 없지만 재미있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나을 수도 있을 것이요"라고 하며 가버렸다. "뭐 이런 처방이 다 있나?"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곧 그의 부모는 무슨 수를 다 써본다는 생각으로 백방으로 수소문해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당시 민유신이라는 사람이 이야기꾼으로 유명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그를 가까스로 청하게 되었다. 민유신 이란 사람은 성현들의 말씀을 좋아해 늘 배우고 익힌 인물로서 7세부터 70세까지 해가 바뀔 때마다 방의 벽에다 줄줄 써넣고 외웠다고 할 정도로 영특하고 조숙했으며 학문에 대한 깊이가 남달랐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매우 영리하고 총명하며, 특히 말을 잘하였다. 특히 옛 사람의 기인한 절개나 거룩한 발자취를 흠모하여 이따금 의기에 북받치면 흥분하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한숨 쉬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남양에 사는 민유신은 이인좌의 난에 종군한 공으로 첨사를 제수 받았으나, 집으로 돌아온 후로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민유신은 벼슬길에는 나서지 않고 죽을 때까지 큰 포부를 가슴에 지니고 살았는데 항상 재치 있는 말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통상 기인으로 알려져 오고 있었다. 이러한 민유신을 박지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신 것이다. 박지원의 집안으로 들어오게 된 민유신에게 부모는 그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부탁의 부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민유신은 도착하자마자 인사도 나누지 않고 때마침 피리 불던 이의 뺨을 때리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얼굴이 뿌루퉁 성낸 얼굴이라고 혼을 내는 것이었다. 이 민유신의 나이 그때가 73세였다. "어디가 아픈가?" "도무지 밥맛도 없고 잠을 못잡니다. 기운도 없고 살맛도 없고....." 그러자 민유신은 즐겁게 손을 방바닥으로 쳐가면서 박장대소를 해대는 게 아닌가. "하하하 자네의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 밥맛이 없으니 살림이 늘 것이고, 잠이 안 온다니 남보다 인생을 갑절을 더 사는 셈일세. 부와 수를 겸했으니 으하하하하 이거 축하하네 축하해." 민유신의 재치로 웃음이 끊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두어 달 함께 지내자 박지원은 거짓말처럼 서서히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민유신은 누가 무엇을 물어도 막힘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난감한 질문을 던져 그를 궁색하게 만들려 애를 써도 그의 대답은 언제나 재치가 넘치고 이치에 맞아 끝내 아무도 그를 골탕 먹일 수가 없었다. 박지원은 병이 낫고 민유신이 세상을 뜨자 몹시 애석해 하며 <민옹전>을 지어 그의 글 <연암별집>, <방경각외전>에 남겼는데, 그와 더불어 나누었던 은어(隱語), 해학(諧謔), 풍자(諷刺) 등을 모아 그를 그리워하는 뜻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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