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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 약광왕 일본으로 가다

2014-02-27 04:00 | 추천 0 | 조회 24

도쿄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히다카시 사이타마현 남부에 작은 도시 히다카. 이곳에 낯익은 우리나라만 있는 장승이 서 있다. 고구려란 말로 일본에서는 고마라고 하는데 장승이 서있는 곳이 바로 고마역이다. 그리고 고마택시가 이 지역에서 달리고 있고 고마신사도 있다. 또 고마초등학교도 있다. 고마산도 있다. 1300년전 고구려군이 이곳에 만들어진 것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린다. 보장왕의 아들 약광왕 그리고 1799인의 고구려인들이 이곳을 만들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50년 후 716년에 일본에 고구려도시가 건설되는데 이때 건너간 사람들이다. 이 신도시 건설의 총책임자는 고구려 마지막 왕자 약광왕이다. 일본에서 신이 되었다. 약광왕 묘도 일본에 있다. 666년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의 전쟁 중에 연개소문의 아들이 투항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있을 때 이때 약광왕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고구려가 망했다는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고마군은 당시에는 지금보다 50~60배 정도 컸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대장장이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세공기술이 대단히 뛰어났다. 종이와 세공품들 뿐 아니라 훌륭한 마구제품들도 만들어냈다. 금세공. 목세공. 직물기술 등을 마구 전했다. 고마가문이 과거에는 지역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가 고마군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무사의 역할을 한다. 철- 한반도에서 전래한 것이고 말- 위지왜인전에 보면 일본에는 원래 말이 없었다. 일본에 말이 유입된 것은 5세기이다. 관동지방에 말을 키우는 집단이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한반도 남부로 추측이 된다. 왜냐하면 말을 키우던 관동지방에서 고구려인의 도구들이 출토되었다. 일본 관동지역의 무사 . 철을 다루는 기술. 말을 이용한 전투술 -수많은 고구려인과 뗄 수 없다. 지금 고마신사에는 약광왕의 60대손이 이곳을 지킨다. 고마 후미야스라는 사람인데 그동안 26대까지는 고구려인끼리만 혼인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27대부터 일본과 결혼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파생된 성씨들이 있다. 26대 후손 때 고마라는 성은 고마군이라는 군의 명칭이므로 부담스러워서 안썼다고 하는데 고마군은 이루마군. 히다카마치. 히다카시로 바뀌었다. 1300년 오랜세월이 흘렀다. 아무튼 고구려 성씨들이 이 외에도 아주 많다. 아타라시. 아라이. 간다. 나카야마. 고이즈미. 오카나무리 등 고마가문의 친척인데 716년에 고마군이 생길 때 도래해 온 고구려인의 성씨다. 혼조. 간다. 아라이. 나카야마. 후쿠이즈미. 요시카와. 등이 고마씨 계도를 이루고 있고 수많은 고구려인 성씨들이다. 또 여기에는 우리나라에는 전혀 없는 고구려 음악이 전승돼 내려오고 있다. 바로 일본 아악의 한 축인 고마악이다. 이것이 고구려 음악인데 550년에 들어왔다라고 일본역사에 있다. 이것은 중국의 당악보다 훨씬 먼저 들어온 것이다. 현재 일본의 아악은 당나라음악과 고구려음악이 합쳐진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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