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는 한지 또는 화선지 같은 종이에 물을 매개로 먹과 붓을 가지고 종이 속으로 삼투시키는 작업입니다. 서양화는 주어진 캔퍼스 표면위에 물감을 튀어 오르게 해서 볼륨, 질감을 처리한다면 동양화는 질감이 없이 종이 내부로 스며들어서 종이와 일체를 이루는 작업입니다. 동양의 채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화면위에 물감의 층을 올리는 것이긴 하지만 서양화와는 달리 채색화 역시 수십번 칠한 채색 물감들이 종이 내부로 스며들어서 종이 자체와 일체를 이루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양의 그리기와 동양의 그리기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면을 어떤식으로 다루르냐의 문제입니다. 그림은 주어진 평면,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표면이 없다면 회화는 존재할수 없습니다. 서양화는 표면을 면, 천에서 시작하고 동양화는 종이, 비단에서 시작합니다. 이 그림은 고찬주라는 작가의 채색화작업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선도 보이고 검은색도 보이지만 대게 이 그림은 한지에 채색물감으로 전체적으로 칠해서 이루어진 그림입니다. 단, 이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채색물감인 분채나 석채를 사용하기 보다는 과슈라고 하는 서양의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과슈는 불투명 수채화에 가깝기때문에 동양화의 채색물감과 상당히 유사성이 있는 재료입니다. 화면 정 가운데에 진입한 사람의 얼굴, 남자를 올려놨고 남자는 두 팔로 손잡이를 간절하게 잡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마 전철이나 버스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귀가하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제목은 하루입니다. 이 제목이 이 그림의 모든 것을 이미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늦은 시간인것 같고 하루에 직장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한 남자의 표정이고 신체입니다. 우리는 늦은 저녁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역안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장면입니다. 자리가 없어서 서서 손잡이를 부여잡고 있는 이 남자는 아마 꽤나 지치고 힘들었던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넥타이를 약간 느슨하게 풀고 소매를 걷어붙힌 상태에서 양복 상의를 어깨에 걸쳐놓았습니다. 다소 역삼각형으로 밑에서 위로 쳐다보듯이 독특한 구도에 의해서 이 남자의 얼굴과 손, 상반신이 좀더 집중적으로 우리에게 쏠리고 있는 느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표정은 상당히 무표정하고 아마 머릿속에는 이 힘든 순간을 빨리 견뎌내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는 표정같습니다. 분명히 오늘 힘든 하루를 치뤄냈던것 같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현장에서 풀려나와 마지막 안식처 같은 집으로 귀가하기 직전에 지치고 힘든 표정들입니다. 아마 이 표정은 동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얼굴일것입니다. 기존의 동양화에서 얼굴이라면 한결같이 박재처럼 자리하고 있는 여자들의 얼굴, 미인도같은 얼굴을 그리거나 또는 노인들의 얼굴을 정적으로 그림의 소재적인 차원에서만 호출했다면 오늘날 동양화는 더이상 그런 그림들만 그리진 않습니다. 그런 그림들은 그냥 그림속에서 요구하는 어떤 것들이었겠죠. 오늘날 작가들은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다양한 얼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찬규가 그린 이 하루라는 그림속에 등장하는 얼굴은 아마 작가 자신이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만났던 얼굴이고 그 얼굴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그 얼굴이 너무 많은 말들을 해주기때문에 그것을 작업실에 와서 기억해서 그렸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귀가하는 이들의 얼굴, 표정이 상처처럼 남았던 것 같습니다. 길에서 우리는 저런 얼굴을 수시로보지만 저런 얼굴들을 보는 것은 마음편한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저렇게 힘든 얼굴을 하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면서 하루하루의 생을 보낼 것입니다. 누구나 저런 얼굴을 하나씩 달고 집으로 귀가할것입니다. 그것이 이렇게 다소 비정하고 어려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흔하게 접하는 얼굴이라는 얘기를 이 작가는 전통적인 채색화 기법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채색화 기법이 더 이상 꽃이나 나비나 미인도에 머물지 않을수 있는 어떤 길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