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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언제라도 예스하라

2012-10-04 04:00 | 추천 0 | 조회 21

안녕하십니까? 부부 Fun 더하기의 이병준입니다. 다 큰 아이 문제로 상담오시는 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분노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는 것입니다. 덩치가 커진 아이가 분노를 표현할 때는 솔직히 무서워지기까지 한다고 하죠. 아니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 두렵기도 하구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노의 이면에 깔린 심리적 메카니즘부터 알아야겠죠? 분노의 뿌리는 ‘거절감’에서 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앞부분에는 존속살인사건이 등장하는데요. 친형 카인이 친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그것도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계획된 살인이었습니다. 바로 카인의 마음 밑바탕에 깔린 심리적 정서는 분노였고 그 분노의 뿌리는 ‘거절감’이었습니다. 사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에도 그 이면에는 ‘거절감’이란 심리적 메카니즘이 깔려 있습니다. 물리적 폭력, 심리적 폭력도 문제이겠지만 당하는 아이가 느끼는 심리적 거절감, 홀로 있다는 느낌, 버림받은 느낌, 무리 중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느낌이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 문제도 그 이면엔 심리적 거절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거절이 아니라 수용이 제공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가족구성원들끼리는 어떤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더라도 일단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과 ‘느낌’에는 윤리나 도덕이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이란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든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한 생각과 느낌 자체가 충분히 수용되는 경험을 할 때일 것입니다. 단, 수용이란 말 한 것 자체를 수용한다는 뜻이지 내용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용의 수용 여부는 내가 판단하며 거기엔 반드시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엄마, 휴대폰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꿔 주세요.”라고 할 때 “얘가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너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니?” 와 같은 방식은 거절감을 유발합니다. 그럴 때 “최신 휴대폰 갖고 싶니?”라고 받아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욕심이 되었든 변덕이 되었든,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철부지 말이라도 그 자체를 받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 주고 안 주고에 대한 것은 부모의 기준을 제시하고 지키면 됩니다. 이를테면 약정기간을 채워야 한다거나 휴대폰 구입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게 한다거나 학교에 휴대할 수 없다거나 집에서도 일정시간을 사용금지라는 기준을 설정하시면 됩니다. 자녀들은 언제나 요구사항이 많습니다. 그 모든 요구를 들어줄 필요도 없습니다. 자녀들의 요구에 대한 수용과 거절의 이상적 비율을 부모님들께 불어보면 7:3이라고 합니다. 수용을 7로 하고 거절을 3정도 하면 수용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어떤 분은 5:5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적인 수치는 3:7입니다. 수용을 3개만 하고 거절을 7개 해도 아이는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습니다. 다만, 거절할 때는 거절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면 됩니다. 그럴 때 부모가 독선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 고리타분한 사람, 구닥다리라는 느낌을 주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수용은 수용의 가치를 떨어뜨려 정작 수용이 수용으로 느껴지지 못하게 만듭니다. 자녀에게 뭘 해 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분이 있다면 이젠 그 마음에서 해방되십시오. 사람은 부족한 것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너무 풍족한 것이 죽이게 되지요. 자녀들의 요구에 대해서 마음만 충분히 받아주면 대부분은 포기하거나 욕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모와 나눈 대화, 마음을 표현하는 기술,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얻어내는 협상의 기술 등, 또 마음 자체를 언제라도 받아주는 부모의 넉넉함은 아이에게 내적 자존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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