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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금이라 해도 믿는 신용 - 호리킨 박분 (屈金 箔粉) 300년

2014-10-01 04:00 | 추천 0 | 조회 14

안녕하세요. 홍하상입니다. 일본 사람들도 홍콩 사람들 만큼 금을 좋아한다. 유명한 교토의 금각사는 금으로 도배를 한 전각이다. 1950년, 그 절의 수도승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미워서’ 거기에 불을 질러 버렸다. 그걸 소재로 쓴 소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유명한 단편 소설 『금각사』이다. 그때 대대적인 금박 작업이 한 번 있었고, 1987년에도 다시 한 번 금박 작업이 있었다. 금각사가 금으로 도배했다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금칠을 한 것이 아니라 금박 판을 입혔다는 뜻이다. 1987년 공사의 경우 건물 전체에 가로·세로 10.7㎝의 정사각형 금박 판을 20만 장 가량 붙였다. 무려 7t의 금이 소요됐다. 오사카성 7층에 가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황금다실이 있다. 차를 좋아했던 그는 황금다실을 만들어 놓고, 안에서 다회를 열었다. 황금다실을 만드는 데도 약 40만 장의 금박 판이 쓰였다. 무게로 치면 14t가량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너무 화려한 황금다실을 만들자 다도 스승이었던 센노리큐는 ‘다도는 검소 정신의 발현인데, 사치가 극에 달했다’고 비판했다가 할복자살을 명받아 죽었다. 오사카 신사이바시에는 그 황금다실을 본뜬 ‘오키’라는 선술집도 있다. 오키는 실내가 온통 금판이다. 1만 분의 1㎜ 두께 만드는 기술 일본은 1000여 년 전부터 금박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금박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 이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나자와(金澤)에서 임진왜란 때 출병하는 성주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조선의 금박기술자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는 포로로 잡아온 조선의 금박기술자를 데려다 가나자와에 살게 했다. 그 후 일본의 금박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한다. 오늘날 가나자와는 교토와 더불어 금박기술의 메카다. 기록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금박 가게는 서기 1700년에 창업한 교토의 ‘후쿠다 금박’이고 이어 ‘호리킨 박분(堀金箔粉)’이 1711년 교토에서 개업했다. 가나자와에서는 ‘가타니’라는 금박 업체가 400년 전인 1600년대에 문을 열었지만 기록상의 창업은 1899년으로 전해진다. 교토 시내 데라마치 도리 윗길 대로변에 ‘호리킨 박분’ 가게가 있다. 가게에는 쇼윈도가 설치된 10평 남짓한 매장이 있고, 그 안에 사무실이 있다. 이 가게 매장에서는 자전거, 벽시계, 프린터, 노트북, 금 골프공(홀인원 기념) 따위의 각종 기념품에 금박을 입혀 팔고 있다. 호리킨은 우리가 흔히 아는 금도금 가게가 아니라 금을 얇게 펴서 물건에 금박을 입히는 회사다. 이처럼 금을 얇게 펴는 기술을 ‘박타지’라고 한다. 금박의 두께는 금을 몇 번 두드렸느냐로 결정된다. 일본 금박기술은 10원짜리 동전 크기의 금을 1만 번 정도 두드려 다다미 한 장 크기로 만들 수 있다. 1만 분의 1㎜ 두께로 펴는 것인데 그 정도 두께면 콧김에도 날아갈 정도다. 호리킨은 매상의 95%를 콘덴서, 인쇄용 프린트 기판, 상품 포장지, 고급 건축자재 등 납품 분야에서 올려왔다. 일반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식기, 초콜릿, 과자 포장지, 금으로 쓴 글씨가 필요한 특수분야 등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 왔다. 통상 금박 제품은 금 96%, 은 3%, 동 1%의 합금을 의미한다. 그러나 호리킨은 순도 99.9%의 금박을 만들어냈다. 30년 전부터는 일본 청주에 금가루를 넣기 시작하면서 몸에 해로운 구리 함유량을 아예 없애고 99%의 순금가루를 개발,청주병 속에 넣은 것이다. 금가루를 청주 속에 넣으면 미관상 아름답기도 하지만,금이 류머치스 치료에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청주를 좋아하는 중년의 세대는 관절이 약해지므로 의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있다. 또 근래에는 생선초밥에도 금가루를 뿌려 먹기도 한다. 이 경우 가격이 비싸지지만 아름답고, 관절염 치료에도 좋아 인기만점이다. 한국금박기술도 일본과 대등 호리킨은 최근 한국 등 다른 나라의 금박기술이 일본과 대등한 수준까지 발전하자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최근 들어 화장품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금가루가 들어간 화장수, 금가루 입욕제, 금비누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금박 스프레이는 개당 350엔부터다. 그 중 비싼 것은 개당 2000엔으로 교토의 게이샤나 젊은 멋쟁이 여성들이 사용하고 있다. 금가루가 들어간 입욕제 ‘황금의 청춘’은 3년 전부터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이것들은 젊은 여자 사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수용해 성공한 경우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차별화된 휴대전화를 갖고 싶어 한다는 점에 착안해 휴대전화 케이스나 버튼 등을 금박으로 장식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과거와는 달리 시대에 맞게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은 혁신의 연속이다.” 2004년 새로 취임한 제10대 사장 호리치 유키(堀智行·39)의 말이다. 그는 요즘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판로를 개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300년간 10대를 내려오면서 가게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고 묻자, “금을 취급하는 가게이므로 신용 제일과 무차입 경영”이라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300년간 자신의 가게는 단 한 번도 금의 순도나 함량을 속인 적이 없어 쇠를 금이라고 말해도 소비자가 믿을 정도의 신용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호리킨 금박은 지난 300년간 단 한 푼의 빚도 없는 무차입 경영을 지켜왔다. 빚이 없는 경영에 철저하면 절대 리스크가 없다는 것이 집안 대대로의 경영방침이다. 이렇게 하면 회사의 발전은 느리지만, 대신 늘 안전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다. 무차입 경영의 결과로 발생한 이익으로 2003년에 청수사 앞에 있는 노포 소로에도 지점을 냈고, 2004년에는 오사카와 이탄시 공항 안에 새 점포를 개설했다. 호리킨 박분의 제품은 교토 특산품인 인형, 칠기, 회화재료, 부채 등에도 사용되고 최근에는 약품, 과자, 술 등 식품에도 금박이나 금분이 쓰이고 있다. 호리킨 금박은 이런 금박 제품 외에 은제품, 알루미늄 등을 얇게 편 제품도 생산 판매한다. 최근에는 장식용 금박 전사지, 각종 금속 분말가루 등 분야에도 진출했고 자동차 타이어의 휠 밸런스에도 금박을 납품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회사에서도 이 가게의 금박제품을 사용하여, 현재 약 2000여 종의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좀 더 폭넓은 제품을 개발 중이다. 호리킨 금박은 300년의 역사에도 현재 자본금 1000만 엔에 50여 명의 종업원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있다. 교토의 가게들은 점포의 확장이나 신규 개설보다는 현재 가지고 있는 가게에 만전을 다하는 자세가 있다. 욕심 내지 않고 100년이고 200년이고 꾸준히 노력하다가 잉여자본이 생길 때 점포를 늘리거나 새로운 분야로 진출한다는 것이다. “넓은 마음으로 멀리 보라.” 호리킨 박분의 9대 사장의 말이다. 당대에 승부를 걸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현대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지루한 경영방식이지만, 안정적이고 기술의 진보가 끊어지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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