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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인절미떡 이치와

2013-08-08 04:00 | 추천 0 | 조회 72

안녕하세요. 홍하상입니다. 교토의 북쪽 이마미야(今宮) 신사 앞에는 인절미 구이로 유명한 두 가게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한집은 1천년의 긴 역사를 가진 이치와,또 한집은 400년된 가자리야이다. 이 두가게는 전통 일본 기와집으로 모양새가 거의 비슷하고 분위기도 아주 비슷하지만 떡맛은 약간 다르다. 가자리야는 본래 가게 이름 그대로 400년전 가자리야의 초대주인이 이마미야 신사에서 금속장식품을 만들다가 떡가게를 차려서 유래된 상호이다. 현재의 주인은 9대째인 가와이케 게이코(73)씨. 이 가게는 늘 이치와에게는 역사와 전통 면에서는 밀리지만,떡을 만드는데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나름대로 이치와의 맛과는 다른 떡 맛을 내는 것이다. 그 비밀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 집의 떡 만드는 비법은 문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며 알려주기를 거부한다. 그래도 굳이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원조인 이치와와는 된장의 거래선이 다르고, 설탕의 배합비율이 다르단다. 가사리야와 이치와 다른 점 중의 하나는 가사리야에서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직접 떡을 구워보는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천년된 이치와도 대단하지만, 또 그 옆에서 400년간 똑 같은 인절미를 구워온 가사리야 또한 나름 대단한 가게인 것이다. 이마미야 신사 앞에 이처럼 오래된 인절미 가게가 생긴 것은 마쓰리 때문이다. 이마미야 신사에서는 매년 4월 두 번째 일요일 날, <야스라이 마쓰리>(평안제)가 열린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마쓰리이다. 이 마쓰리의 유래는 헤이안 시대 중기 잇조(一條)천왕의 아들이 병에 걸리자 이마미야 신사에 와서 빌었던 데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 신사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 중의 하나가 아부리(구운)인절미떡이다. 이 떡을 바치면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또 병뿐만 아니라 화재나 횡액을 막게 해달라고 빌기도 한다. 결국 병에 걸린 왕자가 병이 낫게 되자 이 신사에서 기도를 하면 영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 신사는 유명해진다. 오늘날에도 매년 4월 둘째 주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만 명의 참배객이 이 신사에 모인다. 바로 그 참배객들은 신사참배를 마치고 이치와나 가사리야에 들러 떡 한 접시를 먹고 간다. 이치와나 가자리야의 인절미 구이에 향이 좋기로 소문난 교토의 녹차와 더불어 먹는 것을 바로 교토를 대표하는 전통의 맛으로 쳐주기 때문이다. 본래 신사에 떡을 바치던 것에서 유래 초대 창업주는 일문자옥화조(一文字屋和助)로 광륭사에 오카친이라는 떡을 만들어 신사에 바친 것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나 서기 1000년경부터는 흰 된장을 바른 아부리 떡을 만들어 지금의 이마미야 신사에 바치기 시작했다. 당시에 이 떡은 신이 먹던 귀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다 1468년 경 교토의 대기근이 들어 일반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자 당시의 오닌 천황이 일반인들에게 떡을 팔라고 지시하여 그때부터 아부리 모찌를 일반인들도 먹게 되었다. 그후 이 떡은 17세기 일본 다도의 창시자인 센노리큐가 다회를 할 때 다식으로 먹으면서 유명해졌다. 숯불 아부리 떡은 흰 된장을 발라 구운 것으로 소박한 맛이 있는 교토 떡의 원조이기도 하다. 원조 이치와. 이치와의 창업은 서기 1000년이니 올해로 1009년째를 맞는다. 현재의 주인은 하세카와 미에코(長谷川美惠子.72)로 24대째이다. 필자가 이치와에 간 날, 유감스럽게도 하세카와 미에코 사장은 병이 나서 가게에 나오질 못했고 대신 그녀의 동생인 하세가와 치요(64)씨가 숯불을 끼고 앉아 열심히 아부리모찌(인절미 구이)를 굽고 있었다. 치요씨의 언니는 최근 건강이 좋질 않아 가게에 나오지 못해 대신 자기가 일하고 있으며, 언니가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이 없어서 자신의 친딸(39)이 장차 가게를 이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외려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톱만한 인절미 떡을 편편하게 누른 후 대나무꼬치에 5개씩 끼워 살짝 구워 숯불에 굽는 비교적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리고는 그 떡을 달짝지근한 흰 된장에 찍어먹는다. 꼬치 12개 1인분의 가격은 500엔. 이 정도면 일본에서는 아주 싼 가격이다. 고풍스런 분위가 물씬 감도는 가게에는 이 날도 7-80명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가장 손님이 많은 날은 4월 둘째 주의 마쓰리 날로 이 날은 하루 3천명의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이 꼬치를 보는 순간, “정말로 교토에 왔구나”하고 느낄 정도로 이 꼬치는 교토의 명물이다. 어떤 사람은 이 꼬치를 먹기 위해 20년 만에 다시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꼬치 떡은 쌀가루로 만든다. 재료는 예부터 교토 인근의 시가현의 하부타에 있는 도매상이 가져다준다. 시가의 하부타는 일본에서 가장 쌀맛이 좋기로 소문난 고장. 쌀맛이 좋다보니 그 가격이 여타의 쌀보다는 30%나 비싸다. 이치와에서 사용하는 하루 쌀의 소비량은 40-50킬로그램 정도이니 적어도 하루 4,500인분은 파는 셈이다. 특히 교토의 관광철인 봄, 가을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 인절미구이 가게가 잘 되자 교토에는 좀 더 싼 가격으로 파는 인절미구이를 파는 새로운 업자가 많이 생겼다. 덕분에 한때 재료값이 폭등해서 업자들이 재료를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치와의 경우 무려 1000년간 영업을 해왔으므로 도매상으로부터 재료를 구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교토의 상법에 이런 말이 있다. “갖고 있어라. 더 가지고 있어라.” 유사시에 재료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늘 비상용을 확보해두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맛도 갖고 더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재료값이 올랐으나 이치와는 1인분에 500엔이라는 가격은 30년전부터 줄곧 지키고 있다. 또 떡을 굽는 숯도 와카야마현에서 나는 목탄만을 고집한다. 와카야마는 산세가 험해서 예부터 나무의 재질이 좋아 사찰의 기둥이나 서까래 등 건축자재로 많이 쓰였으며 숯 또한 일본 내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지방이다. 와카야마에서 나는 숯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다. 최근 가장 인기있는 기슈 숯선물셋트로 1킬로그램에 1575엔(한국돈 2만3천원 정도)이나 한다. 와카야마의 숯이 좋은 이유는 그 숯으로 떡을 구웠을 경우,인절미가 가지고 있는 음식의 잡스런 맛을 숱의 향이 모두 상쇄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 이 숯으로 고기를 구우면 단백질이 분해되는 것을 막고,구울 때 아미노산이 나와 한층 고기의 맛을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치와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값이 비싸지만 와카야마의 숯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일본의 식당에서는 값이 비싼 와카야마 숯이나 일본 숯대신 중국 산 숯을 쓰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 숯을 써서는 채산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치와가 지난 천년 동안 번영해온 이유는 값을 떠나 떡을 구울 때 떡맛을 가장 좋게하는 와카야마 숯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고집이 바로 이 가게를 천년동안이나 번성시켜 왔을 것이다. 시가현 하부타에서 나는 좋은 쌀과 교토의 좋은 물,그리고 품질 좋은 숯,여기에 비장의 흰된장이 어우러져 참으로 소박한 맛을 내는 것이다. 대대로 딸이 이어가는 가게 하세가와 치요 씨의 어머니는 하세가와 아사코 여사로 1911년에 태어나 23세 때 이 가게로 시집을 와서 전통의 맛을 지킨 후 장녀인 하세가와 미에코에게 물려주었다. 이른바 이 가게의 전통인 <一子相>(일자상전)이었다.일자상전이란 한 자식에게만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하세가와 미에코씨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여동생인 치요씨의 딸에게 가게를 물려주게 된다. 왜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주지 않고 딸에게 물려주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이 이 가게의 전통이란다. 아들들은 대개 한 재산 받아서 자신만의 사업을 해서 독립하는 것이 그간의 가풍이고,다른 사업을 할 능력이 안되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가게에서 쓰는 쌀,숯,흰 된장 등의 사입과 관리를 맡는다는 것이다. 또 가게의 개보수 역시 남자의 몫이라고 한다. 비록 인절미구이 가게라고는 하지만 천년을 해왔으니 돈을 벌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더니 ‘안 벌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단다. 늦여름이지만 여름은 여름인데 이 더운 날, 숯불을 끼고 앉아 떡을 구울려면 덥지 않은가 하고 재차 물으니 주인이 가게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아닌가 하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자신의 언니도, 자신의 어머니도 이 떡을 구우면서 “내가 이걸 언제까지 구워야 하나 ‘하는 말을 평생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날이 추우면 추워서 힘이 들고, 더우면 더운대로 힘이 들고, 손님이 없으면 없어서 힘이 들고, 너무 많으면 바빠서 힘이 들어 그때마다 이 일을 꼭 평생 해야하나 하는 푸념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하세가와 치요씨 자신도 언니를 도와 평생 떡을 구우면서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어머니도 했으며 그 어머니도 그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들은 결국 이 가게를 꿋꿋히 지켜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이 일을 중도에서 포기한다면 지나간 1천년 동안 가게를 운영해온 조상들에게 면목이 서겠느냐는 것이다. 그 들 조상들도 그렇게 힘들었지만 평생 포기하지 않은 일이므로 자신 역시 목숨을 걸고 포기할 수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집안이 지난 천년간 남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떡장사를 해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봤자 떡장사,그래도 떡장사> 그녀의 말 속에 직업에 대한 깊은 철학이 절절하게 울려왔다. 한접시에 겨우 500엔짜리 인절미 떡이지만,이 직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던 것이다. 땀이 뚝 뚝 떨어지는 한 여름철에 먹었던 이치와의 구운 인절미구이 떡 한접시속에 지난 천년간 이치와 집안의 땀과 눈물과 정성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그 떡을 먹었다. 천년된 이치와와 400년된 가사리야. 두 가게는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사실은 함께 전통을 지키면서 땀과 눈물과 정성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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